이사야서 20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3년동안 지내면서 유다에 대한 예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발가벗기시어 당신의 종을 부끄럽게 하신 것은, 식상한 신앙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는 ‘환기’ 였습니다. 기억해 봅시다. 왜 예수께서 벗기신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을까요?
더 중요한 질문은…, 이 시대에 벗기워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목사’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벗은 ‘성도’는 보셨는지요? 선지자도 그리스도도 모두 벗기움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셨는데, 목사도 성도도 벗을 수 없다고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수치를 당하겠는가…? 주님을 위하여 당하는 작은 손실도, 이유 없는 야유도 견디지 못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오해를 받거나 모함을 당한다면 여러분은 견딜 수 있습니까? 이것이 나의 신앙의 수준 입니다! 잘 믿는척은 하지만 실상은 껍데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나 지금이나 선지자 또는 주님의 일군의 옷을 벗기시는 이유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죄 많은 세상에 보내셨을까요? 죄 없으신 예수께서 너희를 죄 가운데서 살리시려 죽어 주셨으니 너희는 이제 “다시는 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의 무게를 못 이기고 “예수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죄 가운데로 세상 가운데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저희를 벗기시겠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통해서 깨닫는 것은, 목사니까 받는 영광도 있습니다. 아니 지나치다 싶을정도로 높임 받고 대접 받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말로는 섬긴다지만 목사의 체면과 권위가 손상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목사이기 때문에 받는 수치와 수모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목사니까 수치도 수모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한 번도 벗은 적이 없다면, 주님의 종이라는 칭호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내가 주님의 손에 들린 진흙이 되는 것은 그렇게 주인이 원하시는 대로 날 사용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를 부끄러움의 자리로 던지시고, 나를 구원 하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여 누군가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내 자신을 주님께 던지려 합니다. 내어 놓음이 필요한 때 입니다. 그 분 마음대로 빚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