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얻은 아들 이삭의 존재는 아브라함에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이삭에 대해 말씀해 주셨듯이, 그는 약속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금지옥엽으로 길렀던 이스마엘조차 이삭에게 온전한 복을 전수하기 위해 내보내야 했습니다(창세기 21장). 그야말로 이삭에게 모든 것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주관해 오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갈데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심과 평행을 이룹니다.
모리아 산 장면을 생각해 보면, 이제 아브라함과 이삭 두 사람만이 힘겹게 모리아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번제로 드릴 양이 어디 있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간단하게만 대답할 뿐입니다. 본문은 이 안타까운 여정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 아들이 짊어지고 왔던 덤불을 말없이 펼쳐 놓고 이삭을 묶어 제단 위에 두고는 칼을 취하여 아들을 죽이려 합니다. 긴장이 극대화되는 순간이지만 이삭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아님을 우리는 처음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극적인 순간 하나님의 사자의 목소리가 급하게 아브라함을 막아 세웁니다. 그리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 한 사람과 그 후손들에게만 복을 주시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 주실 뿐만 아니라, 복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약속에서 아브라함의 “씨”가 크게 번성할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후손이 대적의 문을 취할 것이라는 메시야 축복까지 베푸십니다. 그 씨로 말미암아 궁극적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하나님 복의 통로가 되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복을 전하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불러 복 주신 이유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심기워져서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