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느 8:8,9)
위의 말씀에서 ‘신앙생활의 행복’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신앙생활이 권태로웠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배가 귀찮고, 헌금을 착복했으며, 음란한 생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거룩한 열정에 감염되어 성벽을 중건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건된 것은 성벽이 아니라 이들의 내면의 성소였습니다. 이들이 성벽을 지으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가 너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자성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새해 첫날이 되자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수문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말씀이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올바르게 주님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올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올바른 깨달음으로 이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의 행복’은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으로부터 옵니다. 올바른 깨달음으로부터 옵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어깨너머로 복음을 배우고 세상정신과 혼합된 기독교에 충만한 신앙생활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세상적인 즐거움을 교회에서도 찾으려고 할 때 신앙생활이 주는 행복은 영원히 찾을 수 없습니다.
성도가 돌아갈 영원한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내 삶에 자양분이 되어 내 삶을 움직일 때 성도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