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부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나 머리 좋은 사람이나 인물이 이만하면 됐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세우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람 사는 사회는 정말 돈이 말하는 사회입니다. 돈이 있으면 죽을 목숨도 살립니다. 돈 없는 사람은 살려낼 목숨도 잃어버립니다. 인간 사회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기쁜 소식을 가난한 자에게 전하게 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는 메시야의 사역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자유를 얻은 포로가 되었고 석방된 죄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도다’ 처음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 죽었던 자, 이게 우리의 원래 모습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가 거기에서 놓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참 묘하게도 하나님의 이런 은혜를 잘 잊어 버립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이 사실은 배부른 자의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그런 걱정이나 고민을 말하기 전에 내가 포로되었던 시절 아니 죽었던 시절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면 보따리 내 놓으라고 그러죠? 남의 얘기가 아니고 우리 얘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