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몰라 고난 받고, 때로는 낙망하며 눈물로 그 길을 걸어갔던 것이 아닙니다. 더 단단한 식물을 먹으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길은 히브리서 11장의 많은 경우들처럼 나라를 잃을 수도 있고 톱으로 켜는 것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복에 복을 주시고자 기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시려는 복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 복이 오히려 화가 되어 우리가 다칠까 해서 우리가 아까워서 조심하시는 겁니다. 가나안을 허락하실 때도 그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되지 않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운전이 미숙한 아들에게 차 키를 건네기를 꺼려하는 것은 차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 차가 아들을 다치게 할까봐, 아들이 아까워서 조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찬송가 455장 가사를 보면,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 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고백입니까? 이유식을 먹는 걸음마 겨우 떼는 신앙의 수준을 벗어나서 멀고 험한 길 앞에서도 주님만을 따라가겠다는 다짐이요 소원입니다. 나의 궁핌함은 나의 필요는 주님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채워주실 것이니 주님만 따라가겠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많아 교만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물질이 없어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운 겁니다. 어느 찬송의 어느 가사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지나온 날들 속에서의 감사가 있을 수 있겠구요, 다가올 날들의 다짐과 기도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려면 주님을 찬송하면서,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게 하시옵소서” 이것이 2025년의 우리의 다짐이요, 기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