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말은 내가 ‘하나님의 양’으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동의 신분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목동으로서 양을 치며 경험했던 목자의 심정을 알기에 그는 당시 히브리인들이 그렇게 신비롭게 여겼던 ‘야훼’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라고 표현합니다. 어쩌면 너무도 볼품없고 초라한 이름이 바로 ‘목자’이었을 것입니다.
목자는 풀을 찾아 물을 찾아 떠돌고 떠도는 나약한 인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에서부터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악취나 진동하고, 가축과 함께 지내니 그 몸엔 동물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묻어 있을 게 뻔합니다. 또 어린 가축을 젖먹이기 위해 끌어안고 있었더라면 그 젖에 젓은 몸은 온통 쉰내와 썩은 내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목자는 거처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저 떠돌고 거리나 들이나 어두워지면 자리 깔고 누워야 했습니다. 이런 초라한 이름을 신에게 갖다 붙이다니...,
그렇다 해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에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 그 여호와를 설명할 방법이 목자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초라하고 더럽게 냄새나는 이름이지만 철저하게 경험에서 고백 된 이름이 바로 '나의 목자'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더군다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자기 양들을 위해 험한 길을 묵묵히 걷고, 길에서 잠을 자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며, 몸에 오물이 묻어도 그 손과 발, 얼굴에 썩은 내가 나도 개의치 않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여호와로 살아갈 수 있느냐? 그것은 목자를 따라본 양만이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길을 걸어가길 원한다면, 내 자신을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묵묵히 목자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목자가 하자고 하는 대로 해 본 후에 우리도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