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12절)
사실 요한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혹시 헛된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요한과 같이 사명에 충실하고 담대히 진리를 선포한 사람을 이토록 처참하게 죽도록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런 하나님이 정말 사랑의 하나님일까요?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 때 오히려 고난과 비참한 꼴을 당한다면, 누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려고 하겠습니까? 누가 그런 험한 일을 당하길 원하겠습니까?
마태복음 21장의 악한 농부들의 비유를 보면, 주인이 열매를 얻기 위해 자신의 포도원에 종들을 보내는데, 농부들은 그 종들을 죽여버립니다. 보낸 종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다 보고도, 주인은 계속해서 또 다른 종을 보내고 또 보냅니다. 그러니까 보냄을 받은 종들은 앞에 갔던 종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 보고서, 자기도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가야 합니다. 왜? 주인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주인에게서 받은 사명은 가서 열매를 받아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종들 중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면 핍박을 당하거나 죽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왜?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를 위해 보냄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주님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렇게 죽는다는 말입니까? 반드시 그렇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나아가는 사람들, 세례요한처럼 죽음 앞에서도 사명을 다하는 사람들이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입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다가 허망하게 사라진 헤롯의 삶을 원하십니까,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의 삶을 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