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고기를 낚던’ 어부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꿔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 낚는 어부는 제자를, 고기를 낚기 위해 던지는 그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의 그물에 잡히는 물고기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과반수가 어부였고 나머지는 세리와 직업조차 밝혀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었습니다. 왜 주님은 세상의 엘리트들을 놔두시고 이들을 택하셨을까요? 오늘 내 자신을 어부로 비유한다면 성경은 이렇게 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그렇더라도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며,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는 주님의 어부로서의 삶은 살아야 할텐데요… 세상에는 예수님의 어부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나서도 자신 있게 어부라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예수님을 응원하지만 반대 상황에 이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돌려 다른 선수에게 들러붙는 사람들, 안전한 관람석에 앉아 응원만 할 줄 알지 경기장에서 필요한 희생과 고통은 조금도 모르는 사람들, 예수님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어도 그분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는 사람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군중들은 예수님의 기적 을 기대하며 이튿날에도 그 장소로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미 호수 건너편으로 떠난 뒤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6)
더 이상 떡은 없고 오직 예수님만 남았을 때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6)
자신을 희생할 만큼 그분과 가깝지는 않습니다. 나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군중 속의 한 명이 아닐까요? 아니면 어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