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기독교 신앙인에게 가장 친근한 단어 입니다. 죄가 많고 극심할수록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크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이 말씀은 죄를 많이 지면 은혜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이 은혜가 넘치는 곳에서는 죄가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뜻 입니다. 당연히 용서받은 죄인들이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가 더한 곳에는 은혜가 넘친다”는 역석적인 말씀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곳에 죄가 넘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죄는 점점 더 사라져야 합니다.
‘은혜’를 오해하면, 쉽게 죄와 타협하고 거짓과 불의와 부정을 용납하게 됩니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우리의 행함과 상관없이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 어떤 죄도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며 은혜를 베푸실 때 우리에게 값을 치루라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 값을 치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 값을 치루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생명 값을 치루시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란?, 우리의 죗의 값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주심에 대한 반응으로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더 기쁘게 봉사하며 더 자발적으로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 더 사랑하지 못해 죄송해요’ ‘제가 더 헌신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속상해요’ ‘제가 좀 더 도왔어야 하는데 아쉬워요’라고 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은혜로 사는 여러분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