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왜 장남인 에서를 택하 지 않고 차남이 야곱을 택하셨겠습니까? 왜 야곱 의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을 택하셨겠습니까? 왜 이새의 일곱 아들 가운데 다윗을 택하셨겠습니까?
송명희 시인은 ‘공평하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이유는? 그분은 남들이 갖지 않은 것 있습니다. 예 수 믿는다는 겁 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재 물도 있고, 지식도 있고, 건강도 있고, 그러면서 들을 것을 듣고, 볼 것을 보고,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도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교회를 건축하는데 어떤 장로님 한 분이 100억을 헌금 하 셨답니다. 어떻게 그 교회는 그런 장로님이 계신답니까? 정작 우리 교회에 그런 분이 계셔야 하는데, 우리 교회는 그런 분이 안계십니다.
다시 물어봅시다. 정말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 이십니 까?
누구든지 사랑한다는 면에서는 공평하십니다. 예수그리 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죄인 된 우리를 불러 불러서 의인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우리가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겁니다. 그렇기에 십자가 사랑은 누구 에게나 공평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은혜와 복을 주심에 대해서는 결코 공평하 지 않으십니다.
사울이나 다윗이나 그 형편과 처지에 관계없이 부르셨습 니다. 만약 사울 왕도 다윗과 같이 변함없이 주님의 뜻을 위해 행했다면 주님께서도 그를 버리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그가 먼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그를 물리치 신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헌금이 많으냐 적으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많든 적든 최선을 다해 봉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 됩니다.
송명희 시인이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던 이유는, 전신 마비의 장애인, 그럼에도 자신의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 이시기에 그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겁니다.
동전 두 닢을 헌금한 홀로 사는 여인이 주님의 칭찬을 받았 다고 우리도 똑같이 동전 두 닢을 내자는게 공평이 아닙니 다. 가진 사람이, 배운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어떻게 많이 가진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과 비교해서 같이 하려고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건 그 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마음 에 드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하나님께 서 복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사랑하시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을 더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