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에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심지어 그녀는 많이 연보한 부자보다 많이 넣은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비록 그녀가 드린 예물은 금전적인 가치는 적었지만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큰 것이었습니다. 예물의 가치는 그 액수가 아니라 그것을 낸 사람의 마음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이 과부의 작은 두 렙돈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한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44절) 부자들의 예물은 풍족한 가운데 낸 것이지만,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쁜 일상 중에 예배당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마음보다는 형식과 습관에 얽매여 예배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예배하려고 예배당에 가면서까지도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가슴에 품고 갑니다. 이런 우리가 주님께 그 무엇을 내어 드리고, 무엇을 감사하다고 할 수 있는지…?
그뿐만 아니라 예배 자들이 예배에 몰두하는 순간에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전화 벨 소리로 마음이 흩어지게 하는 행위는 어떠한 변명으로 용서가 될는지요? 헌금은 감사한 마음에 주님께 올리는 정성의 표시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감사는 물론이며 기쁨과 슬픔 그리고 생명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예물이었기에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마음을 보시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께 습관처럼 몇 십$ 몇 백$을 드리는 것으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해방감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예배당 문을 박차고 나가지는 않는지요?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한 마음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부자는 나쁘고 과부는 착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것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고, 어떤 마음 가짐이냐에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전부를 드릴 수 있는가? 나는 모든 물질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가?
즉, 그리스도의 사랑의 기초가 되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