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한 여자를 예수님에게 끌고 왔습니다. 예수님 발 앞에 내동댕이 쳐놓고 묻는 말이 “이 여자가 간음중에 현장에서 잡혔는데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하자 예수님이 허리를 굽혀 무엇인가를 땅에 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자마자 한 사람, 두 사람 돌을 두고서 달아났습니다. 예수님과 끌려왔던 그 여자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르는 죄가 어디 있습니까? 이 여자를 돌로 쳤다가는 그 다음 자기가 돌 맞아야 될 형편이 되자 모두 돌을 땅에 던지고 도망을 쳤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여, 고개를 들라. 너를 정죄하는 자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주여, 아무도 없습니다”하자 주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집에 돌아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살아라”고 하시고 여인을 돌려보내셨습니다.
그것이 율법과 사랑의 비교입니다.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기 위해서 있는 법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을 살리기 위한 사랑을 주기로 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율법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기고, 피를 흘려 “내가 다 이루었다”하셨을 때,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여행 중에 주막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떠나려고 하는데, 주막에 있던 주막집 어린 딸이 톨스토이의 빨간 가방이 가지고 싶어서 아픈 중에서도 빨간 가방을 자꾸 만지고 어머니에게 이 빨간 가방을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이 아이에게 빨간 가방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가방을 주려고 그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 아이는 이미 죽어 없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의 무덤에 비석을 세우는데 이런 글을 새겼습니다. “사랑을 미루지 말라”.
이번 추수감사절 [555 초청 잔치]에 성도님들의 아름다운 감사가 표현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