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쉼의 사전적 의미는 안식입니다. ‘휴식’이란 단어는 해야할 일을 마친 후에야 얻을 수 있는 보상 같은 느낌을 줍니다. 매우 바쁠 때는 휴식시간을 건너뛰고 일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내가 쉬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나를 치고 올라와 내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쉼은 되도록 짧게, 일은 길게 하려고 합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우수운 이야기지만 목사님들도 안신년(목회7년차)을 갖지 못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 안식년으로 1년을 쉬고 돌와 오면 이미 다른 목사님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내가 돌아갈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식월을 만들어 1년에 2~3개월씩 쉬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쉼은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쉼없이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나”를 신의 자리에 올려 놓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으로서, 나는 나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 삶의 여러 모양의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고 쉼을 누리는 것은 돈 많고 풍랑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일까요? 하지만 우리 삶에 어찌 잔잔한 날만 있을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하는 끝없는 논쟁의 끝은, 하나님은 닭을 창조 하셨을까요? 알을 창조 하셨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일단락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쉼이 먼저일까요? 일이 먼저일까요? 하나님은 일을 창조 하셨을까요? 쉼을 창조 하셨을까요?
쉬고 일할까요? 일하고 쉴까요?
저는 이 말씀을 붙들고 다음 한 주간을 쉬려고 합니다. 일이 내 능력을 펼치는 장이라면, 쉼은 내 능력과 욕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내 삶, 주어진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더불어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감사를 회복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생산라인에 24시간 가동되는 기계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무엇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존재가 아닌, 쉼을 통해 기쁨과 삶의 방향을 회복해야하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