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잘못 된 죄의식은 우리를 믿음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바른 죄의식은 신앙의 진도를 나아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바른 죄의식이 있다면, 그 죄를 해결 해 주실 예수님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른 죄의식이 없다면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더 이상 필요없는 분이 되겠죠!
지난번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다 억울하다 말하고 자신을 피해자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때 자신을 죄인이라 고백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하면 너무나 이상하게 모두 손을 듭니다. 감옥에는 죄인이 없고, 교회는 온통 죄인으로 가득한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그 이유는, 예배에는 은혜가 있고 감옥에는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안에도 탕자의 형인 ‘장자’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장자란? 탕자처럼 교회밖으로 나가 큰 죄를 지어 본적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말합니다. 장자는 교회 봉사도 하고 헌금도 하며 꾸준하고 성실한 사역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대부분 은혜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처럼 "죄인의식"은 없고 "의인의식"만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교인들에게는 솔직히 목사로서 하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탕자처럼 한번 집 나갔다 오세요. 죄 짓고 오세요" 차라리 죄 짓고 와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낫겠습니다. 진짜, 죄를 지으라는 것이 아니라 ‘집나가 보아야 아버지 품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을 죄인이라 인정하며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겸비하여 죄인인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하며 살 뿐입니다. 이러한 죄의식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한다.
죄를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