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 ‘사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잠시 고민에 잠기게 됐습니다. 쉽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겠지만 그 대답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사명’은 [해야만 하는 부담감]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걸고 하라고 명령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것을 위해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그것이 나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생명을 바쳐서 하라고 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왜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이가 아직 젊기 때문일까요? 건강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명’ 감당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맏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0)
평소 마음에…, 이걸 해야 할텐데, 이런분들께 도움을 드려야 할텐데, 이렇게 섬기며 살아야 할텐데, 그 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등등, 무언가 각자가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부담감이 있을 겁니다. 바로 그 부담이 사명인 것이라는 생각 안 해보셨나요?
모세는 공주의 아들로 자라면서 자기가 유대임임을 알고 그들과 다르게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에 부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언가 해 줄 것이 있지않을까 하는 부담을 갖고 고민하던 차에 공주의 아들의 자리와 부와 명예를 버리고 광야로 들어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부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명이었습니다. ‘부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입니다!
아닌면, 그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설레는 것, 미치도록 좋은 것, 그것을 위해 살고 싶고, 그들을 위해 살고 싶고, 그것만 하며 살고 싶은 바로 그것…, 그것도 사명입니다! 젊은 이들에게는 ‘사랑’은 가장 가슴 설레는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젊은이들은 사랑을 하는 것도 사명일 수 있습니다. 저는 목회가 좋습니다. 이 일이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목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각자의 사명을 발견한다면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도 쉬워질 것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