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은밀하게 도우실까요?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은밀’은 ‘숨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숨어있지만 존재한다는 의미가 ‘은밀’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습니다. 흔히 연인들의 대화를 은밀한 대화라고 이야기합니다. 남들은 알 수 없는 연인들만의 대화, 그들끼리 완벽하게 통하는 은밀한 대화, 이것은 남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연인과 나눈 은밀한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이야기한다면, 그는 연인을 진정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랑은 곧 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자기들만의 ‘은밀한 대화’가 있고, ‘비밀’이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은밀한 대화’가 있고,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은밀한 대화는 기도요,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깨달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아!’하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고, 깊이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체면치레 신앙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되고, 더는 그런 신앙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행하는 선행을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바꿔 말하면 은밀하게 숨어서 지은 죄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 체면치레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한다 하고, 교회를 위한다 하고, 자기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 신앙을 들먹거리고, 결국은 사람에게 박수 받으려 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꾸짖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일들 역시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선행’처럼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께 꾸짖음을 당했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외식하는,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하며, 부지불식간에 지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