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축제다’라는 말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축제처럼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윗이 다시 언약궤를 옮길 때, 그 행열은 축제 분위기 였었습니다. 그러나 그 축제는 웃사의 죽음으로 초상집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엎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을 따랐으므로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맨 레위 사람을 도우셨습니다. 무리는 감사함으로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하나님께 헌상했습니다(대상 15:26).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감지되는 예배 현장에서 기쁨이 없을 수가 없지요. 그분을 향한 찬양과 자원하는 헌상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옵니다.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정도 있습니다.
이처럼 바른 예배는 진정한 의미에서 축제입니다. 하지만 축제를 벌인다고 바른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 10장 3절 말씀에 따르면, 백성을 대신하여 제사하며 분향하는 일을 맡은 제사장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만인이 제사장이기 때문에 모든 예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입니다. 공예배는 그 가까이 함이 좀 더 특별한 의미로 나타나는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 교회가 규정된 예식을 통해 좀 더 의미 있게 하나님을 가까이 합니다.
규정대로란? 단지 정확하게 형식에 맞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입술로는 존경해도 마음이 하나님께 멀다면 ‘헛된 경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장 10-17절에는 하나님을 괴롭히며 지치게 하는 헛된 예배도 있음을 언급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하나님 백성답게 살지 않으면서 안식일의 예배 규정만 지키는 형식적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태도를 단지 보이러 오는 것, 마당만 밟는 것, 헛된 제물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예배를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저주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사 29: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