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는 ‘이웃 사랑’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 두 계명은 두가지의 계명이 아니라 하나의 계명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씀은 언제나 제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식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목에다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넘처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인하여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헌금하고 봉사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그리스께 속한 사람이라고 빛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세상과 결별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그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세상 안에서 그분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수단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대상은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다른 사람의 이웃이 아니라 내 이웃입니다.
눅10장에 보면, 주님은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선한 사마리안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룰 말씀하신 다음에 주님은 그 율법사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 율법사가 "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 나의 이웃인가? 강도 만난 자입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들 주변에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인가? '자비를 베푸는 자'입니다.
많지 않아도, 넘치지는 않아도,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의 것을 나누며 자비를 베푸는 자, 바로 그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인 것입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 10:4)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
반드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몰라 주어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