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도들은 ‘후회’가 아닌, ‘회개’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후회와 회개는 둘 다 지난 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후회나 회개를 하려면 자신이 무슨 잘못을 범했는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철저히 깨닫고 시인해야 합니다.
이처럼 후회와 회개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후회와 회개에 대해 사도바울은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9-10)"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면 그것은 후회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라면 그것은 회개인 것입니다.
또한 죄에 대한 처벌을 누가 내리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처벌을 자기나 혹은 사탄마귀에게 두고 있다면, 그것은 후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께 두고 있다면 그것은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 그가 예수를 은 삼십에 판 것은 분명 인신매매행위였기 때문에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습니다(신24:7). 가룟유다는 그것을 곧 뼈저리게 뉘우쳤고 자신이 행한 것이 범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도 그는 사탄마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처우를 기다리거나 그 처우를 수용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의 경우. 그 여인의 범한 죄도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속합니다(신22:22). 하지만 그녀의 범죄행위에 대해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그녀를 살리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대신 벌을 받을테니 너를 지은 죄로부터 용서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회개의 끝은 예수님의 처우를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를 통해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는 죄를 범치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아버지께서 치러야 했던 죽음의 고통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