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세메스로 올라가는 두 암소는 숭고한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인도가 있었습니다. 두 암소들은 새끼 송아지를 뒤에 두고 왔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끌면서도 구경거리가 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명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저하지도 않았고, 돌이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새끼 송아지 때문에 슬피 울면서도 사명 완수를 위하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목적지인 벧세메스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제 새끼 송아지에게로 돌려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훌륭히 사명을 달성한 것에 대해 상급을 받을만하고, 더 이상 눈물 흘릴 필요가 없을 만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벧세메스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소들을 잡아 번제물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14절)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4절은 하나님께서 본문의 두 암소를 통해서 주시는 교훈의 절정이요 대미(大尾)입니다. 이 말씀을 대할 때 비록 미물이기는 하지만 봉사와 희생의 숭고함을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사명자의 길이란 끝이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명자의 길은 오직 자기의 생명을 주님께 드리는 데서 마감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주님은 일생동안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사셨고 당신의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길을 갔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우리 모든 직분자들은 주님을 향한 봉사와 헌신의 동기와 목적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동기에서 목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내가 죽는 것이요, 하나님만이 영광을 거두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